1. 에베레스트(Everest 8,848m) 위 치 : 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는 발견자인 영국의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입니다 . 초등은 1953년 영국의 존 헌트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인)와 셰르파 노르게이 텐징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세계 최고봉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고 고상돈 산악인이 1977년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위 치 : 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르 산군
또한 등반 성공률이 50% 정도로 지극히 낮아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8,000m봉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부르는 K2의 이름은 '초고리'입니다.
초등은 1954년 A. 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대가 7월 31일 아브루찌 릉을 통하여 시도를 해서 L. 라체델리와 A. 콤파뇨니가 초등을 이룩했습니다.
1977년에는 일본이 42명의 등반가를 동원하여 정상등정에 성공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86년 김병준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아부루찌 릉을 통해 정상에 올랐습니다.
위 치 : 네팔 히말라야 동부 칸첸중가 산군 칸첸중가는 8,586m로 세계 3위의 고봉입니다. 칸첸중가는 티벳어로 '5개의 큰 눈의 보고'라는 뜻이며 네팔인들에게는 최고의 성역으로 간주되는 산입니다. 따라서 현지인들은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을 극히 꺼린다고 합니다.
주봉은 1955년 찰스 에반스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서 초등이 되었는데 등정자인 조지 밴드와 브라운은 성역을 밟지 말아달라는 현지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정상을 몇 걸음 앞둔 지점에서 등반을 멈추었습니다.
성역으로 간주되는 칸첸중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은 영국 원정대의 이같은 신사적인 행동은 알피니즘의 구현으로 히말라야 등반사의 한장을 장식하며 등반대의 성가를 더욱 드높였습니다.
한국에서는 87-88 동계 칸첸중가 원정대(부산 대륙산악회)가 캐러번 도중 대원 1명이 사망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등정에 성공하였습니다.
위 치 : 네팔 히말라야 쿰부 산군의 중북부
다른 8,000미터 봉에 비해 등반이 자주 이뤄지지는 않으나 성공률이 매우 낮은 험준한 봉우리입니다. 초등은 1956년 에글러가 지휘하는 스위스 원정대에 의해 5월 18일 이루어졌는데 루이징거와 라이스가 서벽을 경유해서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로체 남벽이 꼽히는데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8000미터급 14봉을 모두 오른 폴란드의 예지 쿠크츠카도 이 곳 로체 남벽을 오르던 중 추락사했습니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연결하는
위 치 : 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 산군 동부
마칼루팽이라고도 불리웁니다.
북릉으로 7,880미터 지점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5월 15, 16, 17일에 아무런 사고 없이 연속으로 정상에 도달하였습니다.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위 치 : 네팔 쿰부 지역과 티베트 자치구
네팔쪽의 남면은 상당한 급경사에 장장 2km에 달하는 넓고 긴 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난파라(Nanpa La, 5716m)를 넘어 북서릉을 통해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위 치 : 네팔 중부, 다울라기리 산군 최고봉
1950년에서 1959년 사이에 프랑스, 스위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가 교대로 일곱 번에 걸쳐 원정을 했으나 모두 8,000미터선 아래서 실패했습니다.
1960년에는 막스 아이젤린이 조직한 스위스 원정대가 북동릉을 경유하여 5월 13일에 초등에 성공했습니다.
다울라기리는 잦은 악천후에 따른 급격한 기후 변화로 위험한 산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히 남벽은 1977년 라인홀트 메스너의 실패 이후 아직도 미답봉으로 남아 있는 극도로 위험한 벽으로 등반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8년 부산합동대에 의해 가을에 등정에 성공하였습니다.
높 이 : 8,156m 위 치 : 네팔중부,마나슬루 히말라야 주봉
일본 원정대가 4회에 걸쳐 마나슬루 등반 루트를 찾아냈습니다.
1956년 5월 9일 마키대장이 이끄는 일본 원정대의 이마니시와 셰르파 걀첸 노르부가 정상등정에 성공했습니다.
마나슬루는 한국 산악인에게는 비극의 산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1972년에 김정섭 대장이 이끄는 한국 원정대가 노말 루트로 등반을 하던중,
6,950미터 지점에서 눈사태로 4명의 한국대원과 1명의 일본인, 그리고 10명의 셰르파가 사망하는 히말라야 등반 사상 최악의 사고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1976년 봄 대한산악연맹이 등정을 시도했으나 다시 실패하고, 1980년 봄에 이르러서야 동국대 산악회에 의해 세계에서 8번째로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위 치 : 파키스탄, 펀잡 히말라야
히말라야산맥의 8,000m 이상 고봉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지리적으로 다른 거봉들과 떨어져 있어 정상 부위의 바람과 눈보라는 다른 어떤 봉우리보다도 강합니다.
낭가파르밧의 대표적인 벽은 디아미르벽과 루팔벽으로 나눠져 있으며 세계최초로 8,000m이상의 14봉을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도 이곳에서 동생을 잃었습니다.
특히 남동벽의 루팔벽은 수직 4,500m의 거대한 직벽으로 등반인들에게 그 위용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의 여성 산악인 고미영씨(41)가 하산중 실족하여 사망한 곳이기도 합니다.
위 치 : 네팔 히말라야 중부, 안나푸르나산군
1950년 이전까지 안나푸르나는 거의 탐사된 일이 없었는데 모리스 에르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본래 공격목표였던 다울라기리의 등반로를 정찰하기 위해 안나푸르나로 진입했다가 등반 가능성을 발견하고 목표를 변경, 부적절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감행, 6월3일에 정상정복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짜릿한 성공과 달리 하산 때 여러 어려운 상황을 겪었는데 당시 흥분제를 과다복용해 자기통제에 실패한 에르조그와 그의 파트너 라슈날이 크레바스에 떨어지며 눈사태에 휩쓸리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하산 중 많은 대원들이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위 치 :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
1892년 콘웨이가 이끄는 영국탐험대의 정찰 때지금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장비를 3개의고소캠프에 운반하기 위해 6,950미터 높이를 여러번 오르내렸습니다.
위 치 : 파키스탄·중국 국경, 카라코람 발토르 산맥의 가셔브룸 산군
위 치 : 중국 티베트 자치구 남서부 시샤팡마 산군
가장 늦게 등정이 이뤄졌습니다. 1961년, 1962년, 1963년 3회의 정찰 끝에 1964년 등정을 시도해 현재의 주접근로인 북면 야북캉가길라 빙하를 넘어 정상정복에 성공했습니다.
평야지대 위에 우뚝 선 시샤팡마로 곧장 불어와
경사 50도의 설벽입니다. 순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14좌와는 별개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15곳을 지목할때 마지막에 오르는 산입니다.
에베레스트 북서 21.5km, 국경선상에 있고, 티벳 쪽에는 갸충 빙하, 네팔 쪽에는 고줌바 빙하가 흐릅니다. 산 이름은 「작은 범위의 빙하(설산)」이란 뜻입니다.
|
'*문화 > 사진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AFP가정한 걸작 사진들 (0) | 2010.04.02 |
---|---|
[스크랩] 고요한 아침 (0) | 2010.04.02 |
[스크랩] 춘설 (0) | 2010.04.02 |
[스크랩] [[풍경]] 자연과 세상구경 (0) | 2010.01.17 |
네팔 - 마차 푸차레 (0) | 2009.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