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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낚시

[스크랩]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by "조우" 2011. 2. 2.

어 부 사 시 사

                                

                                 윤선도


                                            1587(선조20)-1671(현종12)

                                                     본관 : 해남

                                                      호   : 고산 (孤山)

 어초운 윤효정의 15대손 유심의 둘째아들로 서울종로에서출생 8세 때 유기(작은 아버지)의 양자로 입적되어 해남에서 자란다. 18세에 진사초시 20세에 승보시에 장원 하고 1628(인조6)별시 문과 초시장원 師傅(봉림.임평)가 되었으며

1633증관문고에 병과로 급제 예조정량 사헌부지평 등 역임하였다.

 1634년 파직후 해남에서 지내던 중 1636년 병자호란 이 일어나 왕을 지키기 위해 의병을 모집하여 선편으로 왕이 피신해 있는 강화도로 가던 도중  왕이 화의를 맺고 말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뱃머리를 돌려 제주로 피신 가는 길목에 보길도 부근에서 풍랑을 만나 잠시 육지에 상륙하였으나 보길도의 풍광이 너무 좋아  제주행을 포기하고 보길도에 머물게 된다. 정착한 그 일대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낙서재  세연정. 회수당. 금천석실 등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겼다.

 1638년 난이 평정된 후 왕에 문안드리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경북 영덕으로 귀향 1년 후 풀려나면서 보길도에 약 10여년 隱居 어부사시사(고산 52-61세)가 만들어 진다. 그 후에도 출사와 유배가 계속되는데 80평생에 출사9년과 유배14년이라는 남인으로서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전계되지만 조상이 물려준 재산의 덕으로 풍류를 즐기는 한평생이 자연과 벗해 살아가는 여유로움이 가득한 가운데 84세의 일기를 이곳 낙서재에서 마치게 된다.

 고산은 낚시의 광 이였다. 어부사시사의 내용으로 보아 낚시의 즐거움을 마음껏 표현한 생활의 서사시 이며 지방의 토속적 사투리와 유학자로서의 충분한 지식은 스스로의 개성을  적당히 살려 표출한데서 문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어부사시사

 고려 때부터 전하여 온 어부사를 중종 때 이현보가 어부가 9장으로 개작하였고, 이것을 다시 고산이 후렴구만 그대로 넣어 40수로 고친 것이다. 이현보의 어부가에서 시상을 빌어 왔다고 하나, 후렴만 떼고 나면 완전한 3장 6구의 시조 형식을 지니면서, 혀 새로운 자기의 언어로써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시조이다. 고산은 어부사를 정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東方古有 漁父訶 未知何人所爲, 而集古詩而成腔者也

諷詠則江風海雨生牙間. 令人飄飄然有遺世獨立之意.

是以聾巖先生好之下倦. 退溪夫子歎賞無已. 音然響不相應.

語意不甚備.盖拘於集古, 故不免有局促之欠也. 余衍其意,

用俚語作漁父訶,四時各一篇, 篇十章. 余於腔調音律, 固不敢妄議.

余於滄洲吾道, 尤不敢竊附. 而澄潭廣湖片舸容與之時.

使人並喉而相槕, 則亦一快也, 且後之滄洲逸士,

未必不與此心期而曠百世而相感也.

秋九月歲辛卯, 芙蓉洞釣叟, 書干 洗然亭樂飢欄邊船上, 示兒曺



 동방에 예로부터 어부사가 있었으니 누가 지은 것인지 알 수 없고 옛시를 모아 곡을 붙인 것이다. 읊조리며 강풍(江風)과 해우(海雨) 가 입가에 일어 사람으로 하여금 표현이 세상을 떠나 홀로 설 뜻을 같게 한다.

 이런 까닭에 농암(聾巖)선생이 좋아하기를 게을리 하지를 않았으며 퇴계(退溪)선생도 탄상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음향이 상응하지 않고 어의(語意)가 심히 갖추어지지 못하니 대개 옛시를 모으는 데에 억매인 탓이다. 그럼으로 옹색해지는 결함이 있음을 면치 못하나 내가 그 뜻을 덧붙이고 우리말을 사용하여 어부사를 지었으니 사계절을 각 한편으로 하고 한편은 10장으로 했다 나는 강조(腔調)와 음율(音律)에 대해서 감히 망령된 논의를 할 바가 못 되며 창주오도(滄洲吾道) 에 대해서는 더욱 감히 사사로운 견해를 덧붙일 바가 못 된다.그러나 맑은 못과 넓은 호수에서 쪽배를 띄우고 마음껏 노닐 때 사람들로 하여금 함께 소리 내면서 서로 노젓게 한다면 또한 한 가지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또 뒷날의 창주일사(滄洲逸士) 가 반드시 마을에 동참하여 영원토록 서로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묘년 추구월 부용동늙은낚시꾼이(芙蓉洞釣叟) 세연정 낙기란 가 선상에서 아이들에게 보이노라.(고산유고에서 발취)

 

 

 

 

어부사시사

 

 

겨울 동안은 저 수온의 관계로 낚시가 되지 않아 출 조를 하지 못하다 봄 수온이 오르면서 출 조가 시작이 된다.


압개예 안개 것고 �뫼희 해 비췬다”

   앞바다에 안개 걷이고 뒤산에 해비친다


압개” 보길도지역에서는 연안 바다를 “개”라고하며 갯벌이 들어난 지역을 “갯바탕”이라 고한다.

앞바다 안개 것이고 뒤산에  해 비칠 정도의 날씨라면 낚시에 너무 좋은 날이다.


배떠라 배떠라”

   배 띄어라

  버릿줄 : 배를 육지에 고정하는 줄

“배떠라”의 의미는 버릿줄 풀고 배를 띄어라 는 의미며 어조사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밤믈은 거의 디고 낟믈이 미러온다”

   밤물은 거의 가고 낮물이 밀려온다.


낚시꾼들의 아침 물때는 동트는 시점을 “희색이”라하여 최고의 시점이며 초들물이 그 시간에 맞아 떨어지는 날을 최고로 치고 있다.

“밤믈은거의디고”는 간조를 의미하며 "낟믈이 미러온다" 는 초들물을 의미하여 물때를 놓일까바 초초해 하는 모습에서 낚시꾼으로의 간절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이지역의 노젖는 형태의 단어는 노를 미는 행위를 “어서라”당기는 행위는 “데래라” 라고 하는데 지국총지국총 어사와는 어조사로서 연속된 행위의 보조 미학 단어이다.


“강촌(江村) 온갓 고지 먼 비치 더옥 됴타”

   강촌에 온갖 꽃이 먼 빚이 더욱 좋다

고산 이분은 낚시를 다니면서 배를 부리는 하인을 데리고 다녀던 흔적들을 여려 군데서 볼 수 있다.또한 그 정도의 지위였다면 하인은 필수였을 것이다.

이 시절 낚싯배 수준은 어른이 걸어가는 속도보다 못하여 낚시 포인트에 가기 까지 산수 구경하며 천천히 가다보니 시 한수 나오지 않으면 그것도 이상하다.

지금을 살면서 그때의 한가함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돛배는 바람만 맞으면 물살 가르는 소리만 삭삭 날뿐 그 통쾌함 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지금은 어떠한가? 시끄러운 발동기 소리에 바로 옆 사람의 말도 듣지못하는 혼란 속에서 시 상은 생각도 말아야하며 이동하는 시간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나 편리하기로 친다면 무지하게 편하고 빠른 시간에 이동할 수 있어 좋지만 어부사시사 와 같은 시 상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현대를 사는 우리세대는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봄은 수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고기들의 입질이 좋아지는 시기이다 특히 완도지역은 음력 3월에 접어들면서 대양의 어족들이 산란을 하기 위해 연안으로  밀려오는 시기이다.


“날이 덥도다 믈 우희 고기 떳다”

   날이 더워진다 물위에 고기 떴다


고기떳다”라는 말은 이 지역에서 고기가 물기시작하면 “고기떳다” “고기비쳤다” 라고 흔히들 하는 말이다.



“갈며기 둘식세식 오락가락 하느고야”

  갈매기 둘씩셋씩 오락가락하는구나


한가하고 여유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낫대는 쥐여잇다 탁쥬ㅅ병(濁 甁) 시럿나냐”

   낚시대는 가지고 있는데 탁주

병은 실었느냐? 


여기에서 하인을 데리고 다녀든 흔적을 볼 수 있다

  

낫대는 쥐여잇다”

  낚시도구는 내가 들고 있는데


탁쥬ㅅ병(濁 甁) 시럿나냐”

  탁주 병은 배에 실었느냐

라고 묻는 것은 하인이 아니면 동행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그 시절의 배를 부리는 일이라면 무척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였기 때문에 아마도 하인을 동승하고 여유를 즐겨를 것이다 


 이절이야말로 완도 보길도지역의 낚시꾼이 아니면 격어보지 못하는 지역의 특성을 잘 표현한 특수한 표현이다.

지역에서는 동풍을 “샛바람” 이라하고 북풍을 “하누바람”이라하며 서풍은 “늦바람”동남풍정도라면 “맛바람” 이라고 하는데 동풍 “샛바람”이 불기시작하면 파도가 높아지면서 낚시를 할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만다 그때는 바람을 피하여 노화와 보길도 사이 바람의 영향을 극히 적게받는 지역으로 이동하여 낚시를 하는데 그때도 이러한 현상은 지금과 같다.


“동풍(東風)이 건듣 부니 �결이 고이 닌다”

   동풍이 살짝부니 물결이 고이인다


바람은 조석으로 변한다.

아침에는 한점바람도 없던 날이 점심시간을 넘기면서 바람이 일기시작 파도가 거칠어져 낚시하가가 곤란해진다.

이런 상황은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때에는 섬의 뒤편 바람 의지지역으로 가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돋다라라 돋다라라”

  돛올려라


여기의 표현은 돛을 올려라 이며 각장마다 표현이 약간씩 다른 것은 그 의미가 진행과정에 따라 적당한 표현으로 구사하였다.

완도에서는 지금도 “돛 달아라”로 표현하고 있다.


동호(東胡)를 도라보며 셔호(西湖)로 가쟈스라”

   동쪽바다를 뒤로하고 서쪽바다로 가자


돛배의 운항은 뒤바람이 제일 운항하기에 좋은 바람이다 동풍을 받아 서쪽으로 갈때는 뒤바람이기 때문에 아주 좋은  항해를  할 수 있고 바람이 일기 시작할 때라면 순풍 이였을 것이다 “순풍에 돛 달았다”육지뒤편 서쪽으로 가자. 지금도 이것만은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압뫼히 디나가고 뒷뫼히 나아온다”

      앞산 다가오고 뒤산 나온다


순풍에 돛달고 물살 가르면 섬을 돌아 포인트를 이동하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면 한 폭의 영상을 보는듯하다.


 


이날은 바람도 없고 고기를 많이 낚은 날인가보다.

글의 진행 내용으로 보아 아주 긍정적인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는 거시 벅구기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

   우는 것이 뻐국이고 푸른 것은 버들 숲이다


산란을 하기위한 고기들은 육지 가까이에 모이기 마련이다.

이날의 낚시는 육지가까이 뻐국이 소리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낚시를 하였던 것 같다. 산수를 벗하여 즐기는 낚시 漁父 들만의 멋이다.


“이어라 이어라”

   저어라


이날은 바람이 없었던 날이다

포인트를 이동하면서 돛을 올리지 않고 노를 저어서 이동했다.

“이어라 이어라” 노를 “저어라 저어라”

육지와도 가갑고 노를 천천히 저어 이동하는 표현에서 여유로움을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어촌(漁村) 두어 집이 냇속의 나락들락”

   어촌 두어집이 안개속에 들락날락


바람이 없는 날이라 안개 속에 어촌의 집들이 한두 개 보였다 말았다 하는 것이 어촌의 평화스런 모습이 너무 잘 표현되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안개와 연기가 동내에 자욱했다면 바다는 얼마나 잔잔했을까?


“말가한 기픈 소희 온갇 고기 뒤노나다”

   맑고 깊은 바다에 온갖고기 뛰논다


바람이 없는 날이면 바다 또한 맑고 깨끗하다.

그리고 바닷물이 적당히 맑은 날 고기도 잘 문다.

그래서 바다에 고기가 많이 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완도에서 맑고 깨끗한 물의 표현은 “말알간 물”이라고한다.


                       

 이날은 고기를 낚지 못한 날이다


“고운 �티 쬐얀는듸 �결이 기름갓다”

   고운 햇볕 비치니 물결이 기름 같다



햇볕이 좋은날 물결이 기름같을정도의 날씨라면 물이 너무 맑아 고기가 물지 않은 날이다.

그래서 본인스스로 낚시를 포기하고 노를 저어 이 포인트 저 포인트 옮겨 보지만 별 묘안이 없다.

 “그믈을 주어듀라 낙시를 노흘일가”

    그물도 추려두고 낚시도 놓아두자.

 

                    탁영가(濯纓歌) 굴원의 어부가

 

                    滄浪之水淸兮

                    창랑의 물이 맑음이여

                可以濯吾纓

                   가히 내갓끈을 씻겠도다

                滄浪之水濁兮

                     창량의 물이 탁함이여

                 可以濯吾足

                      가히내 발을 씻겠도다

“탁영가(濯纓歌)의 흥(興)이 나니 고기도 니즐로다”

    탁영가에 흥이나니 고기도 잊어노라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 이것이 낚시인 것이며 낚시의 매력이다.

고기를 낚지 못 하드라도 낚시를 즐기는 것이 낚시꾼들의 樂 이며 興이다


                             

 

잠시 공직의 그리움을 석양에 비유하여 자기를 돌아보는 시이다.


셕양(夕陽)이 빗겨시니 그만하야 도라가쟈”

   석양이 비쳐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마지막 나오는 三公 과 萬事 의 표현으로 보아 육십 자기인생을 석양에 비유하여

석양이 비추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석양에 물들어오니 낚시를 접고 집으로 돌아가자

  

돋디여라 돋디여라”

   돛내려라


“돛을 내려라 돛을 내려라” 돛을 내리라는 것은 항해를 마무리하는 과정으로 그날의 낚시를 끝내는 것이다.


“안류(岸柳) 뎡화(汀花)는 고비고비 새롭고야”

   안류 정화는 고비고비 새롭고야


안류(岸柳) 뎡화(汀花)- 언덕의 버드나무와 물가의 꽃


언덕의 버드나무와 물가의 꽃은 구비 구비 새롭고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보길도에는 그 시절에는 어떠했는지 모르나 지금은 버드나무는 그리 흔치않는 수종이다 그러나 가끔 버드나무를 비유한 글들을 볼 수 있는 것은 꼭 버드나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늘어진 버드나무의 형상을 늙은 자기의 모습으로 표현했던지 아니면 어부가에서 그 데로 차용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삼공(三公)을 불리소냐 만사(萬事)를 생각하랴”

   삼공이 부러울소냐 만사를 생각하라


지난 모든 일을 회상하여 보니 지금의 지기모습에 정승을 비유하여 부러울것이 없다는 표현을 간략하게 하고 있다.

어부사시사가 만들어진 년도는 고산이 60-65세의 나이에 만들어 졌다고 보면 그 시절 60세라면 인생의 황혼기로 보아야 할 때임에 석양을 비유한 인생 황혼의 표현은 가히 무리라 아니다.

                        

 

 

이날은 낚시를 가지 않고 등산을 하는 날 이였다.


“방초(防草)를 발와 보며 난지(蘭芷)도 뜨더보쟈”

   방초를 바라보며 난초지초도 뜨어보자


방초(防草) - 향기나는 풀

난지(蘭芷) - 난초지초


보길도의 산세와 풍취는 가히 우리나라 최고이다.

바다와 어우러진 산수의 조화와 아열대 식물군락지로 망월봉과 격자봉 의 상록수림의 식생은 우리나라 유일의 지역이다.

지금은 훼손되어 흔치않지만 자생 풍란지역으로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옛날에는 안개 속에 그 지역을 항해하던 뱃사람들은 보길도에서 풍겨오는 “풍란의 향으로 보길 몇 키로 지점이다”가름하여 항해를 하였다. 근거로 4-50년 전 항해술에도 기록되어 있었던 유명한 지역으로 희귀 풍란과  난초가 많았던 지역이다.

이글의 방초란 풍란을 가리키며 풍란은 바위 언덕에 자라는 습성상 높이 바라봐야하는 모습일 수밖에 없다.


“풍란을 바라보며 난초도 캣어보자”


“배셰여라 배셰여라”

  배 세여보아라


다음 문장으로 보아 산위에서 “바다에 떠있는 배의 숫자를 헤아려 보아라” 라고 풀이하고 싶다.

  

“일엽편주(一葉片舟)에 시른 거시 므스것고”

    넓은바다 떠있는 배에 실려 있는 것이 무었일까? 


산위에서 앞바다에 항해하는 선박을 내려다보면서

일엽편주 - 멀리보이는 저작은배는

시른 거시 므스것고 - 실고가는 것이 무엇일까?

이것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날씨 청명한날 홀로 산위에 올라 망망대해 일엽편주 떠가는 작은 배를 내려다보면서 저배에 무엇이 실려 있을까? 저배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러한 생각들은 누구나 한번 줌은 해 보았을 것이다.



“갈 제는 바뿐이오 올 제는 달이로다”

   갈때는 나 뿐이오 올때는 달이로다


허무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분의 일상의 취미는 낚시였으나 그날은 무슨 이유인지 낚시를 가지 못하고 등산을 하였는데 등산행이 멀었던지 돌아오는 길에 날이 어두워 달을 보고 오게 되었던 것 같다.


 


                     

 

이시 또한 인생의 허무함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취(醉)하야 누얻다가 여흘 아래 나리려다”

   취해서 누었다가 개울아래 내려갔드니

배매여라 배매여라”

  배 매어두어라 (낚시가지 않는다)



“락홍(落紅)이 흘러오니 도원(桃源)이 갓갑도다”

   붉은 꽂잎이 흘러오니 신선락원이 가까이에 있구나


도원(桃源) - 무능도원의 준말, 신선이 살 것 같은 아름다운 곳


여기의 낙홍은 동백 꽃잎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길은 특수하게 동백이 많은 지역이며 개울가에 동백나무가 많아 봄철에 꽃잎이 지며 개울물에 떠서 냇가로 흘러가는 모습들은 흔히 볼 수 있다.

떨어져 흘러내려오는 동백꽂잎을 보면서 자기의 인생을 비추어 보고 있다.

낙화의 표현으로 극락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인세홍딘(人世紅塵)이 언메나 가렷나니”

   티글 같은 인생 얼마나 가련하냐


낙화와 인생을 비유하여 자신의 모습을  가여워하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나라와 집안을 걱정하고 본인의 처신을 돌아보며 다음날 출 조의 흥겨움을 말하고 있다


“낙시줄 거더노코 봉창(?窓) 이 달을 보쟈”

   낚시줄을 정리해놓고 보니 봉창에 달이보인다


“하마 밤들거냐 쟈규(子規)소리 말게 난다”

   벌써 밤이되어 두견새소리 들리는데


“나믄 흥(興)이 무궁(無窮)하니 갈 길흘 니젓땃다”

   닥아올 흥은 무한해서 갈길을 잊고 살고 있구나


여기서 낚시꾼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낚시계획이 세워지면 그날부터 마음이 들떠 밤을 설치게 된다.

어디 어느 포인트에서 얼마만한 고기가 물것인가?

날씨는 좋아야 할 텐데

그날이 휴일인데 집안 식구들은 어떻게 안정시켜놓고 떠날까?

준비물은 전부 준비되었나?


고산도 다음날의 출 조계획에 낚시도구를 챙켜놓고 잠시 누어있는데 봉창에 달이보이고 두견새소리 들리는데 내일의 낚시계획에 들떠있던 감정이 적막함과 고요함 때문인지 해남의 집생각도 나고 나라일도 걱정되어 본인의 처신에 죄책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믄 흥(興)이 무궁(無窮)하니 갈 길흘 니젓땃다”


 

 
이절은 우연히 앞 절(9절) 와 연결되고 있다.

출 조를 떠나면서 초조하고 다급한 표현이 너무 잘 구사되어있으며 지금 낚시꾼들의 모습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신기하기도 하다.


“내일(來日)이 또 업스랴 봄밤이 몃덛새리”

   내일이 또없으리 봄밤이 언제셀까?



“배브텨라 배브텨라”

   배를 육지로 붙여라



“낫대로 막대삼고 시비(柴扉)를 차자보쟈”

   낚시대를 막대삼아 세립문을 찾아보자


“어부 생애(漁父生涯)는 이렁구리 디낼로다”

   어부 생활에는 이런 일이 자주 있다


지금에도 이런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다. 낚시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새벽물때를 찾아간다. 낚시 포인트에 도달하여 희세기(동트는 시점)에 낚시를 드리우면 확실히 많이 문다. 그때가 초들물 이였다면 성공의 확률은 100% 그러나 그 시점이 맞아 떨어지는 날은 한달에 두 번 밖에 없어 이날이 아마 그날로 짐작이 간다.


밤이 세기를 간절히 기다리다 우선 배붙여라 그리고 낚싯대로 더듬더듬 세립을 찾아 나가면서 남이 보았을 것이 부끄러워“어부생애 이런 일은 자주 있다”라고 자기 변명가지 겹들어 하는 모습에서 400년 전 그분의 심정은 지금 우리와 똑같다.


나는 어부사시사 춘사를 해석하면서 너무 흥분되었다.

어쩌면 400백 년 전 고산선생님의 낚시가 지금의 우리 감정과 그리도 닮아있는가?

보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 들이 너무 흡사하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글을 만들어 가는 재주가 너무 훌륭하다.



 




                            

 이제는 여름의 문턱에 장마가 접해있고 태풍도 많아지는 시기이다. 그러나 낚시하기는 좋은 계절이다

지금은 자원의 고갈로 별로 많은 고기들을 볼 수 없으나 40년 전만 하드라도 이시기에는 산란을 위해 몰려오는 고기들로 물반 고기반 이었다.


“구즌 비 머저가고 시�물이 맑아 온다”

   내리던 비 머져가고 시냇물 맑아온다


“배떠라 배떠라”

   배띄어라


“낫대를 두러 메니 기픈 흥(興)을 금(禁) 못 할되”

   낚시대를 들어매니 깊은 흥이 절로 난다


“연강덥쟝(煙江疊嶂)은 뉘라셔 그려낸고”

  산수 절경을 그 누가 그려 낼고.


연강덥쟝(煙江疊嶂)- 연기가 낮게 깔린강과  첩첩산봉우리


장마였던 것 같다.

보길도는 산세가 수려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어지간한 비 정도는 비가 개이면서 바로 냇물이 맑아진다.

이날은 비가 개이면서 바로 화창한 날씨였나 보다


오던비 머져가고 시냇물 맑아온다 배띄어라 낚시대를 둘러매니 벌서부터 흥분된다 배를 띄우고 낚시터로 가는데 비온후 아침 마을에서생긴 연가가 낮게 깔린 강과 첩첩이 싸인 산봉우리 이것은 동양화에 많이 등장하는 풍경이다 이 풍경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구나.



장마가 들어 낚시를 여려날 못하였으니 무지하게 낚시가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날따라 화창한 날이 되어 흥분 상태에서 바다에 나갔는데 산수 절경이 너무 좋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던 심정.



 


이날도 장마철 인가보다 그리고 여름의 날씨는 수시로 변하여 낚시배에 우의를 준비 해 놓아야 한다.


“년닙희 밥 싸두고 반찬으란 쟝만마라”

   연잎에 밥싸두고 반찬이랑 장만마라


“닫드러라 닫드러라”

   닻을 거두어라



“청약립(靑蒻笠)은 써잇노라 녹사의(綠蓑依) 가져오냐”

   삿갓은 쓰고 있는데 우의는 거져오냐?


“무심(無心)한 백구(白駒)는 내 좃는가 제 좃는가”

   무심한 백구는 내 쫓는가 제 쫓는가.


고산은 자연을 무지 사랑하였던 분이다

“연잎에 밥싸두고 반찬이랑 장만마라”

연잎은 가공하지 않은 도구이며 그 시절에는 도시락은 보편적으로 작은 대바구니을 사용하였다. 고산은 시적인 표현의 극대화를 기하기 위하여 연잎이란 표현으로 자연을 강조하였고  반찬마저도 거부하면서 은거하면서 살아가는 자신의 표현을 살짝 비쳐 보이고 있다.

무심한 백구는 서인을 지칭하여 자기의 신변에 위해가 올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인가 라는 해석이 먼저이며 이 시기에는 갈매기의 번식철이 아니어서 서로 엉키는 현상은 볼 수 없으나 먹이싸움에서 갈매기들이 서로 쫓는 현상은 가끔 볼 수 있다.


                              

 이날은 바람이 약간 불었다. 그래도 낚시는 가고 싶었다.


“마람 닙희 바람나니 봉창( 窓)이 서늘코야”

  마람잎에 바람나니 봉창이 써늘코야


이지역에서 마람은 초가지붕을 마람 이라한다.

초가지붕 처마 풀끝이 살랑거린다 그러면서 봉창이 써늘하다 


“돋다다라 돋다다라”

  돛달아라


“녀름바람 뎡할소냐 가는 대로 배시켜라”

  여름바람 일정할소냐 바람부는데로 배맞겨라


“븍포 남강(北浦南江) 이 어디 아니 됴흘러니”

   북쪽포구도 남쪽바다도 어디든지 좋다

  

이날은 낚시 포인트를 결정하지 못하고 낚시를 간 것 같다. 바람이 약간 불어 낚시가 곤란한날이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닫지 않는 지역으로 찾아가려는 것이다.

북포라면 지금의 청별 여객선이 정박하는 지역을 말하고 남강은 예송리 앞바다 정도로 보면 적당하다 

 

 


                           

 이절은 낚시와의 관계를 본인에 비유하여 나라 걱정을 하고 있는 시이다.


 “�결이 흐리거든 발을 싯다 엇더하리”

    물이 흐리니 발이나 씻자


“이어라 이어라”


“오강(吳江)의 가쟈하니 천년노도(千年怒濤) 슬플로다”

   오강를 가자하니 오자서의 죽음이 슬프도다


�결이 흐리거든 발을 싯다 엇더하리”

이글은 굴원의 탁원가에 나오는 창량의 물이 탁하여 내발을 씻겠도다에서 인용한글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천년노도(千年怒濤): 천년동안 성남물결과 같이


“초강(楚江)의 가쟈 하니 어복튱혼(漁腹忠混) 낟글셰라”

   초강을 가자하니 굴원의 혼을 낚을세라


어복튱혼 : 굴원의 시신을 뜯어먹은 고기


오자서와 굴원의 충성심을 본받아 집권세력에 경각심을 주기위한 시이다.

병자호란이후 집권세력이였던 서인은 공서 청서로 분리되어 서인들끼리 서로 싸우며 김자점이 척신으로 집권하여 횡포가 극에 달한 시기여서 고산은 보길도에서 은거하는 관계로 잠시 여유로운 시간이면 나라 걱정을 하였을 것이다.

이시에서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닷물이 흐려 고기가 물지 않는다 발이나 씻자”

  조정이 흐려있다 발이나 씻자


“오강을 가자하니 오자서의 죽음이 슬프도다


오강 - 중국 오나라 전당강


오자서BC559-BC484) -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와 같이 오왕 함려를 도와 나라를 부흥하는데 큰공을 세운사람  오왕 함려가 죽고 아들 부차가 왕을 이어받아 월나라를 점령하고 월왕 구천을 생포하여 불모로 잡아오는데 오자서는 오왕 부차에게 구천을 살려두면 “나라에 큰 재앙이 올 것이다”누차 당부하였으나 월나라에서는 미인 서시(춘추시대 미인계의 표본인물)를 동원하여 오자서를 모략하는데 부차는 서시의 음모에 회유되여 오자서에 자결을 명한다.

오자서는 왕부차가 하사한 “속루검”으로 자결하면서 “내눈을 뽑아 고소성에 걸어두어라!월나라 군대가 입성하는 꼴을 똑똑히 봐주겠다” 그말을 들은 부차는 분노하여 오자서의 시신을 가죽 부대에 넣어 전당강(오강)에 띄워 버렸다. 이 때에 강물이 노하여 큰 파도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9년후(BC 473) 월나라의 침공으로 크게 패한 오왕 부차는 “오자서를 만날 낯이 없구나” 하고 자결한다.

충신의 간함을 왜곡되게 판단하는 지도자에 교훈으로 하고있는 중국역사의 한편이다.


 “초강을 가자하니 굴원의 혼을 낚을세라”


초강- 중국 멱라강 (상강지류)


굴원(屈原 B.C 340-278)

초나라 왕족출신으로 중국 역사상 애국시인이며 정치가 사상가로서 이름이 나있는 사람이다

초나라 희왕은 굴원의 자질을 인정하고 좌도벼슬을 주고 치란(治亂)에 밝은 굴원을 신임하게된다 그러나 초나라는 친제세력과 친진세력간의 권력다툼속에서 굴원의 친제세력이 밀리면서 파직당하고 방량생활이 계속된다.

방량생활 중 남긴 시들은 이소 외에  무수히 만은 시집을 남겨으며 어부가도 포함된다.

희왕 다음 경양왕이 즉위 후 계속하여 시로 표현한 충(忠)을 많이 남긴다.

그러나 경양왕 27년 (BC278)초나라 수도가 함락되어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국의 앞날에 실망한 나머지 분연히 '애영과 회사(懷沙)의 시'를 짓고 음력 5월 5일 돌을 품고 멱라수(호남성 상수의 지류)에 몸을 던져 순국(殉國)하니 이때 그의 나이 62세였다. 애국 시인이었던 굴원은 중국 시가의 세계에서나 중국인의 생활면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 역대의 위대한 시인--이백(李白)과 두보(杜甫)도 예술. 품격. 덕성면에서 굴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굴원이 죽은 5월 5일을 단오절 이라하여 지금도 송편을 강물에 던져주는 풍습이 고기들이 송편을 먹고 굴원의 시신을 뜯어먹지말라는 놀이가 전해지면서 중국을 비롯 말레이 일본 우리나라에서 단오절이 행하여 지고 있다

 

 

만류록음(萬柳綠陰) 어� 고대 일편태긔(一便苔磯) 긔특(奇特)    하다”

   버드나무숲 우거진 곳에 바닷가 돌에 파래가 특이하다


다리예 다 닫가든 어인쟁도(漁人爭渡) 허믈마라”

  묻에 닫거든 어부들의 다툼도 허물마라


학발로옹(鶴髮老翁) 만나거든 뢰택양거(雷澤讓居) 효측(效側)    하쟈”

   백발노인을 만나거든 뢰택양거 본 반아라,


어인쟁도(漁人爭渡) - 고기가 잘무는곳의 자리다툼

뢰택양거(雷澤讓居) - 순임금이 미천할 때 뢰택에서 고기를 잡았는데 뢰택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였다 함


           버드나무우거진곳 바닷가 파래도 특이하다

           묻에 닫거던 어부들의 자리다툼도 허물말고

           노인을만나거든 고기 잘무는곳도 양보하거라.



낚시의 道을 말하고 있다.



 

이날도 낚시가 잘되었다


긴 날이 져므는 줄 흥(興)의 미쳐 모르도다”

긴날이 저무는줄 흥에겨워 모르도다


“돋디여라 돋디여라”

   돛 거두어라



뱃대를 두드리고 슈됴가(水?歌)를 블러 보쟈

   삿대를 두드리고 뱃노래를 불러보자



애내 셩듕에 만고심(萬古心)을 긔 뉘알고

    뱃노래에 들어 있는 만가지 신정을 그 누가 알리오


여름날은 길다 그 긴 여름날에 날이 저무는 것도 모르고 낚시를 즐겨다는 것은 낚시가 매우 잘되었다고 보아야 하며.

돛을 거두고 삿대를 두드리며 뱃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 흥겨움과 노래가사에 들어 있는 뱃사람들의 삶을 생각해보는 여유로움에 낚시가 잘된 하루였다



 낚시를 맏이고 집에 돌아가면서 지은듯하다.


“석양(夕陽)이 됴타마는 황혼(黃昏)이 갓깁거다”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갑구나


배셰여라 배셰여라

  배 세워라


바회 우희 에구븐 길 솔 아래 빗겨 잇다”

   바위위에 급은길 솔아래 비켜 있다


“벽슈앵셩(碧樹鶯聲)이 곧곧이 들리나다”

   숲속앵무새소리 곳곳에서 들리구나


에구븐 - 살짝구부러진

벽슈앵셩(碧樹鶯聲)- 푸른숲에서 우는꾀고리소리


이날은 낚시 손질하고 잡시 쉬면서 여유를 보인다.


“몰괘 우희 그믈 널고 둠 미틔 누어 쉬쟈”

   모래위에 그물널고 돔밑에 누어쉬자



“배매어라 배매어라”

   배매어라


“모괴를 �다 하랴 창승(蒼蠅)과 엇더하니”

   모기를 밉다마라 쉬파리도 어떠하리



“다만 한 근심은 상대부(桑大夫) 드르려다”

   다만 근심은 상대부 들을까 두렵다


창승(蒼蠅) - 창승은 고산시조 산중속신곡 “추야조“ 와  한시 ”차운구이계하“에서 나오는 쉴새없이 비방을 일삼는 조정의 참소배를 가르킨다 


상대부(桑大夫) -  漢 武帝때 사람 양흥양

평준법을 만들어 나라를 다스렸으나 백성들살기가 어려워져  기우제때 공양을 삶아버려야 비가온다하여  여기서는 “소인배”을 자칭한다.


이날은 낚시를 가지 못하고 바닷가에 나와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서 심신의 여유로움을 담아 글을 쓴다


 “모래위에 그물널고 거름배늘밑이 누어 쉬어보자.”

여름더위에 모래사장에서 그물을 널기란 여간 힘드든일이다 땀으로  온몸 목욕하고 널고나면 할 일이 없다.


여기서 돔을 설명하고 넘어가자

돔 : 시골에서 돔이란 거름배늘(퇴비를 썩히기위해 쌓아놓은것)을 말하나 어촌의 거름배늘은 풍량에 밀려오는 해조류를 거두어 모아놓고 마람으로 둘러놓아 썩히는데 그주위에는 그늘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그늘에서 쉬는 것은 어촌민들의 일상이다.

지금 보길도지역에서는 톳을 체취하여 말린다음 수매때까지 쌓아놓은 여려 무더기를 볼 수 있다 그때의 거름배늘(돔)과 너무 흡사하다.

보길을 여행하는 기회가 있으면 400년전 고산이 했드시 돔에서 한숨하는것도 경험이 될 것이다.

   

“모기도 밉다마라 쇠파리도 어떠하리”

너무 현실적이다 갯가의 모기는 특수하여 가죽도 뚜를수 있는 무시무시함 모기이며 쇠파리는 소가죽도 뚤고 피를 빠는 엄청난놈이다.

이런 모기나 파리는 지금도 많이 있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모기 파리는 상관마라는 표현이다.


“다만 근심은 어리석은 소인배들이 들을까 두렵다.”

서인들을 소인배로 직접표현한 부분은 이곳이 처음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고산은 조정의 집권세력을 잠시 들추고 있다.

둠 아래서 쉬던 고산은 파리와 창승 그 무지막지한 피를 발아먹는 흡혈귀 을 조정에의 서인 참소배 들과 결부하고 “다만한 근심은  상대부 들의려다”에서 서인 소인배 들을 우려하는 시이다.



 

밤사이 태풍이 있었던 날이다.

태풍이 휩쓸고간 자리에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밤 사이 풍낭(風浪)을 미리 어이 짐쟉하리”

  밤사이 풍량을 미리 어이 짐작하리


“닻디려라 닻디려라”

  닻을 거두어라


“야도횡쥬(野渡橫舟)를 뉘라서 닐럿는고 ”

   사람은 간데없고 배만 가로 놓였구나


“간변유초(澗邊幽草)도 진실로 어�브다”

   물가 잡초들도 진실로 가엽구나

   

           이시는 唐 韋應物 시에나오는


                  

                    獨潾幽澗邊生

 

                혼자라도 어여쁜 풀 물 가에 나고

 

          上有黃  深樹鳴

 

                   위로는 꾀고리 수풀깊이우내

 

 

           春潮帶雨晩急 

 

                      봄물결 저물녁에 빠르고

 

                 野渡無人舟自橫

        

                나루터에 사람없이 배만홀로 비켜있네

 

야도횡주 - 野渡無人舟自橫

간변유초 - 獨潾幽澗邊生  는 여기에서 인용


지금은 태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일기예보에서 몇 일전부터 예보를 하여주어 피해를 줄여주고 있으나  그 시절의 태풍은 거의 예측을 할 수 없어 바다에서 많은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있었던 시절이다.

그날도 밤사이 태풍이 지나간 것으로 되어 있다.

태풍이 지난 다음은 날이 화창하여 어촌의 전주민이 바닷가에 나와 그동안의 피해를 점검하고 바닷가에 모여 태풍의 이야기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다. 



거기에서 조정의 당파간 대립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태풍의 혼돈속에 파괴되어 가는 배에 비유하였고 간변유초는 본인에 비유하여 망가진 풀이 가엽다는 표현이다. 



 낚시에 재미가 별로 없었던 날이다.


와실(蝸室)을 바라보니 백운(白雲)이 둘러잇다”

    작은 집을 올라다보니 안개가 둘러있다.


배븟텨라 배븟텨라”

   배을 육지에 데라


부들부체 가라 쥐고 셕경(石逕)으로 올라가쟈”

   부체 할랑이며 바위위로 올라가자.


“어옹(漁翁)이 한가(閑暇)터냐 이거시 구실이라”

   늙은 어부 한가하니 이것이 구실이다.


낚시가 별로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오는데 바다에서 집을 올라다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집에 들어간들 습기만 눅눅할텐데 차라리 “석실옆 바위등 으로 올라 가자” 라고 하였는데 또 주이를 의식하게된다 초라한 낚시꾼의 행색에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본인의 처신을 한가한 늙은 어부로 자위하며 행위를 구실로 변명하고 있다.


그래도 명색이 사대부 집안에서 호령하고 사시던 분이 보길 동내분들에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항시 마음의 짐으로 살아가시는 모습






 

가을이 접어들어 본격적인 낚시철이 돌아왔다.

바다의 고기들은 겨우살이 준비를 위하여 가을에는 엄청난 먹이를 섭이해야한다. 그럼으로 낚시가 잘되는 시기이다.



“물외(物外)예 조흔 일이 어부 생애(漁夫生涯) 아니러냐”

   속세에 벗어나서 좋은 일이 어부생애 아니러나


“배떠라 배떠라”

   배띄어라


“어옹(漁翁)을 �디 마라 그림마다 그렷더라”

   늙은 어부를 웃지마라 그림마다 그려져 있드라


“사시흥(四時興)이 한가지나 츄강(秋江)이 �듬이라”

   사시절 똑같으나 가을바다가 으뜸이라


“늙은 어부를 웃지마라 그림마다 그려져 있드라”

동양화 낚시그림에는 허리 구부정한 늙은 어부가 등장한다.

여기에서도 그림을 비유하여 해학적 자기 위안을 하고 있다.


속세를 벗어나서 그래도 할만한 일은 漁父의 생활이다 그러나 늙은 어부의 초라함을 웃음거리로 보지 말아라 신선도에 그려있는 그림 마다 나와 똑 같은 사람이 그려져 있드라 

그래도 사시절중 가을이 낚시의 최적기이다. 낚시를 즐기자.



 

 

 

 낚시꾼이라면 가을낚시를 최고로 치고 있다.


슈국(水國)의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다”

바다에 가을드니 고기마다 살쪄있다.


닫드러라 닫드러라

닻 내려라


“만경딩파(萬頃 波)의 슬카지 용여(容與)하쟈”

맑고 푸른바다를 실컷 즐겨보자


“인간(人間)을 도랴보니 머도록 더옥 됴타”

인간사 돌아보니 멀어도 더욱 좋다



슬가지 - 실컷. 마음껏(산중신곡에 나온 단어)

만경창파 - 넓게 펼쳐진 맑은 물결 


가을을 “天高馬肥” 라고한다 마찬가지 가을의 바다는 “深水魚肥”라고 표현하고 싶다 겨우살이 준비를 위한먹이섭이가 활발한 기간이며 낚시꾼들에게는 절호의 찬스이다


바다에 가을드니 고기들이 살쪄있다 닻내려라 닻내려라 넓고맑은 바다도 한꺼번에 즐겨보자. 인간사 돌아보니 험하고 먼 길이였지만 그래도 좋다  



고산 시의 특징은 자연을 배경하여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면서 긍정적 판단으로 자연과 사물을 관찰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본인이 호남의 갑부로서 일상생활에 궁핍함이 없었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낚시꾼들이 처음 찾는 낚시터에는 지역 어부들의 정보를 알고 낚시에 들어간다.

지역마다 밀물에 잘무는곳과 썰물에 잘무는곳은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백운(白雲)이 니러나고 나모 긋티 흐느긴다”

   안개가 밀려나니 나무끝이 흔들린다.


“돋다라라 돋다라라”

  돛 올려라


“밀믈의 셔호(西湖)ㅣ 오 혈믈의 동호(洞湖)가쟈”

    밀물에 서쪽바다   썰물에 동쪽바다.


“백빈홍료(白?紅蓼)는 곳마다 경(景)이로다”

   힌꽃 붉은꽃 곳곳 마다 아릅답다


안개가 걷이면서 바람이 살짝인다. 밀물에는 서쪽바다 요 썰물에는 동쪽바다 이다 돛달아라 돛달아라 힌꽃 붉은꽃이 가는곳마다 아릅답다.


 

 

이날은 고산이 취한 날이다.


그러기 떳는 박� 못 보던 뫼 뵈느고야”

   기러기 떠있는 것 외에 못 보던 산 보이구나


이어라 이어라”

  저어라


낙시질도 하려니와 취(趣)한 거시 이 흥(興)이라”

  낚시질도 하고 취한 것이 더욱좋디


“셕양(夕陽)이 바애니 쳔산(天山)이 금슈(金繡)ㅣ 로다”

   석양이 퇴색하니 천산이 금으로 수놓은 것 같구나


못 보던 뫼 - 못보던 산으로 풀이해야하나 지역의 정서상 새로 생긴 묘가 하나 있었던것같다.

바애니 - 이지역에서는 퇴색되다의 사투리이다.

고산이 이날은 많이 취하여 항시 보던 산을 착각하고 못보던 뫼라는 표현을 하였는지는 알수 없다.


기러기 떠있는 외에 못보던 산 보이고야 저어라 저어라 낚시질하면서 취하는것도 그 또한 재미이구나 황혼이 흐려지니 하늘과 산이 금빛이구나.




  

 

 고기를 많이 잡은 날이다.


“은�옥�(銀脣玉尺)이 몃치나 걸럿나니”

   은빛 월척을 몇 마리나 잡았느냐


이어라 이어라

  저어라


“로화(蘆花)의 블부러 갈해야 구어 노코”

   갈대나무로 불피어 갈라서 구어 놓고.

딜병을 거후리혀 박구기예 브어 다고”

   질그룻 기후려서 바구니에 부어다오


은�옥� - 은입술의  큰고기(감성돔이나 농어)

이떼에는  참돔은 빠져나가고 감성어 농어 등 은빛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시기이다.


로화의 블부러 -  蘆花 그 데로 풀이 하자면 갈대꽃이다 보길 지역에는 그 시절 갈대가 많았다한다 그래서 보길 바로 앞섬을 노화라는 지명으로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蘆花邑)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갈대를 땔감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박구기예 - 이글은 전문 해설가들이 바가지로 표현하고 있으나 완도지역의 사투리로 바구니 대바구니를 “박꾸리” 라고하며 생선을 바가지에 담는 경우는 없고  바구니에 담아놓는 것이 상예 이다. 나는 박구기를 바구니 로 해석한다.



굴근 강성돔 농어가 몇 마리나 잡혔느냐? 갈대모닥불에 고기별로 구분하여 구어놓고 질그릇에 담겨있는 것을 바구니에 옮겨 놓아라.


시의 구성내용으로 보아 너무 많이 잡은 고기여서 장기보관하기위하여 갈대로 훈제하여 대바구니에 보관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지역은 구시월 “도지”라하여 늦가을에는 갑작스런 바람이 터저 배를 추수리기 어려운 상태가 가끔 발생한다. 오늘 이 그날이다.


  

“녑바람이 고이 부니 다론 돋긔 도라와다”

   늦바람 불어온다 다른데로 돌아와라


“돋디여라 돋디여라”

   돛내려라


“명색(瞑色)은 나아오대 �흥(淸興)은 머러 �다”

   어둠이 닥아온데 맑은 흥이 멀었도다.


“홍슈(紅樹) �강(淸江)이 슬�디도 아니한다”

   단풍과 맑은 바다 싫도 밉도 아니하다.



녑바람 - 옆에서부는 바람

         보길도에서 옆바람이라면 서풍(늦바람)이다

다론 돋긔 - 그대로풀이하면 “달아놓은돛에”라고 해야하나 돛내려라의 표현으로 보아 “다른데로” 로 해석해야 보길도의 지형상 적합한 해석이다.



늦바람 불어온다 다른데로 돌아와라 돛내려라 돛내려라 어둠이 닥아오니 즐거움이 멀어진다 그래도 단풍과 맑은 바다는 싫지도 밉지도 않다.



어둠. 흥이멀다, 싫지도않고, 밉지도 않다, 라는 표현으로 이절에서는 약간의 부정적 분위기가 깆들어 있다.

서인의 세력들이 만만치 않게 밀려온다 정면 대립 말고 돌아서 가자. 돛내려라 돛내려라

국정은 어두어 오고 맑은 나라 멀어진다. 군주 와 서인을 싸잡아 싫지도 밉지도 아니한다 라고 하고 있다.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잠시 임금을 그리워 한다.



“이슬 �견는데 발근 달 도다온다”

     이슬이 깔리는데 밝은달 떠오른다


“배셰여라 배셰여라”


“봉황루(鳳凰樓) 묘연(杳然)하니 �광(淸光)을 눌을 줄고”

  궁궐이 어두어진데 밝은빛은 누구를 줄고

“옥토(玉 )의 띤는 약(藥)을 호객(豪客)을 먹이고쟈

   옥토끼로 찍은약을 호객을 먹이고자


고산은 (1644) 인조의 병이 위중해지자 내국에서 약제를 의논코자 불렀으나 본인의 병환으로 나가지 못하고 대신 치료법을 적은 “갑신소”를 올렸으나 보되지 않은 일이 있었다.


년대로 보아 고산 62세(1648) 인조가 몸이 불편하여 후계자에 관한 문제들이 조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던 시기이다. 고산은 봉림의 사부였던 관계로 봉림이 왕위를 승계할 것을 간절히 바라는 관심사였다  이시기에 호객이라면 진도에 유배온 이경여 와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 교류하던 시기임.

 그러나 년대별로  효종2년 고산 65세 에 어부사시사가 집필되었다는 설과는 기간의 차이가 있으나 고산 62세 만들어진 시가 몇 년동안 집필되어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가을이 저물어 가면서 이분의 외로운 표현이 더욱 많아진다.



“건곤(乾坤)이 제곰인가 이거시 어드메오”

   하늘땅이 제각각인가 이거시 어디메요


“배매여라 배매여라”

   배매어라


“셔풍딘(西風塵) �미츠니 부체하야 머엇하리”

   서퉁이 문득부니 부체질하야 무었하리


“드론 말이 업서시니 귀시서 머엇하리”

   들은말이 없으니 귀 세워서 무었하리



서인들의 행포가 극에 달해 있던 시기이다.


임금과 신하는 제각각 인데 이것이 무슨일인가.

서풍의 먼지바람을 부체로 가려서 무었하리.

들을수 있는 말이 없으니 귀 세워서 무었하리


서풍진(西風塵) - 서풍에 일어나는 먼지를 부체로 가렸던 중국의 고사

                 진나라 성제때  유량과  왕도가 함께 왕을 섬기기는데 유량이 외군으로 출전 승전함에 왕 성제의 신임은 유량에 기울기시작하여 유량이 조정의 권한을 틀어진다

이에 불만이 많은 왕도는 서쪽의 바람이 일어 먼지를  일으키니 왕도가 부체를 들어 가리면서 설명하기를“유량을 먼지같은 더러운 놈이다” 라고 하였다 하여 西風塵 이 고사로 남아있다 (고산유고에서) 


멀리 보길도에 있으면서 왕위계승을 놓고 조정에서는 서인들의 위세가 등등하던 시기여서 서풍에 비유하고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귀 기울려 무엇 하리 하는 하소연이 담겨있다.

   


 

“웃 우희 서리오대 치운 줄을 모를로다”

   옷위에 서리와도 추운줄을 모르것다


닫디여라 닫디여라”

   닻 들어라


됴션( 船)이 좁다 하나 부셰(浮說)와 얻더하니”

   고기배가 좁다하나 떠있으니 어떠하리


내일도 이리 하고 모뢰도 이리 하쟈”

   내일도 이러하고 모래도 이러하니


옷위에 서리와도 추운줄을 모르도다.

어선이 좁다하나 더있으니 어떠하리

내일도 이러하고 모래도 이러하자


보길의 작은섬에 홀로 외로움을 서리와 어선에 비유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 이다”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이글은 자신의 존재를 조정의 임금이 찾아줄 것을 기대하며 서인들을 우려하는 시이다.


“숑간셕실(松間石室)의 가 효월(曉月)을 보쟈 하니”

   소나무 사이 석실에가 세벽달을 보자하니


“배브텨라 배브텨라”

  배붙여라


“공산락엽(空山落葉)의 길흘 엇디 아라볼고”

  빈산 낙엽만의 길을 어이 알아볼고


“백운(白雲)이 좃차오니 녀라의(女蘿依) 므겁고야”

   안개 �아오니 입은옷이 무겁구나


고산은 세연정이 내려다 보이는 산기숲 바위틈에 동천석실이라는 정자를  지어놓고  선을 연마하고 신선의 경지를 노래하며 다도를 익히는 장소로서 활용했던 곳이다.

동천석실이라는 이름은 신선이 사는 곳을 동천복지라고 부르는 데서 연유했다.

어부사시사의 대부분 시상은 동천석실에서 이루어 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동천석실에올라가서 세벽달을 보자하니

낙엽 깔린 산길을 어이알아볼고

세벽안개 이슬되어 입고있는 옷이 무겁구나.


인종이 승하 하고 효종이 즉위한 후 고산은 효종의 세자시절 사부였던 관계로 효종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주요요점을 정리한 “기축소(己丑䟽) 올린다.


세벽달이란 효종을 의미하며 본인이 은거한곳을 낙엽깔린 산길로 표현하고 안개속의 이슬을 서인에 비유하여 표현하지 않아겠는가?



 여기에서부터  冬飼의 시작아다.

겨을이란 계절적으로 정서상 부정적 의미가 많은 계절이나 고산은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표현하기에 노력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구룸 거둔 후의 ��치 두텁거다”

   구름 걷인후에 햇빛이 두텁구나

“배떠라 배떠라”

   배 띄어라


“텬디폐색(天地閉塞) 호대 바다흔 의구(依舊)하다”

   천지가 얼어붙어 있는데 바다는 여전하구나


“가업슨 �결이 깁편 닷 하여잇다”

   살랑거리는 물결이 비단을 편듯하구나


맑게 비치는 아침 햇살과 잔잔한 바다에 올망졸만 바라보이는 섬들의 풍광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겨을바다 그데로 이다.


구름걷인 햇빛은 너무좋고

육지는 삭막한데 바다는 그데로구나

살랑거린물결의 바다는 비단을 펴 놓은듯하구나.


지난밤 추었던가보다

아침에 햇살을 받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겨울바다의 풍경을 잘 표현했다.



 

 

  낚시를 가기위한 준비이다.


“주대 다사리고 뱃밥을 박�나냐”

   낚시대를 다스리고 뱃밥을 박았느냐


“닫드러라 닫드러라”

   닻 들어라


쇼샹(瀟湘) 동뎡(洞?)은 그믈이 언다 하다

   소상 동정은 그물이 언더한다


“이때예 어됴(漁 )하기 이만한 듸 업도다”

   이때가 낚시하기 이만한 때 없도다


보길도 지역은 겨울에 큰 고기가 많이 무는 지역이다 서해안이 수온이 떨어지면서 수온에 따라 회유하던 어족들은 보길도를 거쳐 남하하는데 큰고기들은 여기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 겨울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지역이다.


낚시대를 정리하고 뱃 물세는곳을 막았느냐.

닻 들어라

소상 동정은 그 물이 언다한다.

이때가 낚시하기 그만할 때 없도다.


뱃밥 - 나무배의 특성은 판자와 판자의 잊는부분에 물이 세는 것이 특성이다 그럼으로 판자와 판자사이를 나무 줄기나 결로 박아넣어서 물이 세는 것을 막는다.

소상 동정 - 중국의 호남성에 있는 대호수와 서편에 있는 작은 강   


 

 

소문을 듣고 낚시를 준비하는 광경이다.

겨울의 고기들은 수온이 따듯한 남쪽지역으로 이동하고 수심이 깊은곳에 이동하지 못한 고기들이 때를지여 있곤 하여 이곳을 노려서 낚시꾼들이 모여들기도 한다.


“여튼 � 고기들히 먼 소해 다 갇나니”

  여튼바다 고기들이 먼바다로 다 갔나니


“돋다라라 돋다라라”

   돛달아라


“져근덛 날 됴흔 제 바탕의 나가보쟈”

   잠시 날 좋을 때 제 바탕에 나가보자


“밋기 곧다오면 굴근 고기 믄다 한다”

   미끼 꽃다우면 큰고기 문다한다.


고산은 인근주민들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살았던것같다.

인근 어부들의 낚시하였던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큰고기를 잡아볼 요량으로 전편에 배부터 단속하고 조금 큰바다 수심이 깊은곳으로 낚시를 가기위하여 정보를 수집중이다.


� - 이곳에서는 바다를 “개”라고 한다.

져근덛 - 어지간하면 의 사투리로 저근한”으로 말하고 있다.

제바탕 - 지금으로 말하면 낚시“포인트” 낚시가 제일잘되는곳 


여튼바다고기들이 먼바다로 전부 갔느니

어지간이 좋은날이면 제바탕에 나가보자.

미끼 좋으면 큰고기 문다한다.



 

고산은 보길 전경을 이편에서 제일 극찬하고 있다.

“간밤의 눈갠 후(後)에 경물(景物)이 달�고야”

  간밤에 눈갠후에 풍경이 달라졌다


“이어라 이어라”

  저어라 저어라


“압희는 만경유리(萬頃琉璃) 뒤희는 천�옥산(天疊玉山)”

  앞에는 유리같은넓은바다 귀에는 첩첩옥산


“션계(仙界)ㄴ가 불계(佛界)ㄴ가 인간(人間)이 아니로다”

  신선이사는곳인가 극락인가 인간이사는곳이 아니구나


지남밤 눈갠후의 설경은 모든 경치가 달라있다.

앞에는 유리같은 넓은바다 뒤에는 첩첩옥산

신선세계인가 극락인가 인간세상이 아니구나


겨울 연안의 풍경을 극찬하고 있다.



 

겨울의 갑작스런 바람을 만났다

이곳의 겨울은 초겨울 접어들면서 갑작스레 불어오는 북풍을 “도지” 라 하는데 예상을 하지 못하고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이날은 “도지”를 만난 날이다.


“그믈 낙시 니저 두고 뱃젼을 두드린다”

   그물낚시 제져두고 뱃전을 두드린다.


“이어라 이어라”

   저어라 저어라


압개를 건너고쟈 � 번이나 혜여본고”

   앞바다를 건너고자 몇 번이나 생각하고


“무단(無端)한 된바람이 행혀 아니 부러올까

   갑작스런 된바람이 행여 잔잔해질까?


갑작스런 눈보라 폭풍은 낚시를 하다 만날 경우 정박할 수 있는 포구에 들어오기 까지 고생을 많이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지금은 동력선으로도 어려움이 많은데 그 시절 무동력선으로 얼마나 고생을 하였을까는 상상만 하여도 알 것 같다.

그물 낚시대 거두어놓고 파도가 뱃전을 두드린다.

저어라 저어라

앞바다를 건너고자 몇 번이나 기회를 노리지만.

갑작스레 쌘바람이 행여나 잔잔해 질까?


행여 - 불규칙의 기대치. 예상을 벗어난. 확률이 작은기대. 의 완도지역 사투리   

행여나부대 - 복권 사는 사람

여기서 “저어라”는 표현은 돌풍에는 돛을 올릴 수 없는 것이 무동력선의 단점이다 그래서 노을 저을 수밖에 없다.

배가 금방 뒤집힐 정도의 돌풍의 파도에 바람 의지지역이 약 500M 앞인데 거기까지 가는 것이 망서려지고 초조해하면서 갑작이 바람이 잔잔해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담긴 표현이며 지금도 가끔 경험하는 낚시꾼들의 일상이다.

아무튼 이날은 SOS 의 날이다.

  



  

 

"자라가 가마괴 �낟치 디나거니"

 자려가는 까마귀 몇이나 지났거니


“돋디여라 돋디여라”

  돛 내려라


“압길히 어두우니 모셜(暮雪)이 자자�다”

  앞길이 어두우니 저녁눈이 자자졌다


“아압디(鵝鴨池)를 뉘텨서 초목참(草木斬)을 싣돋던고”

     아압압지를 누가 쳐서 부끄러움을 �어던고


아압지 : 당나라 때에 오원제가 회서에서 난을 일으키매, 이소가 설야에 채성을 칠때 성둘레가 못으로 되어있고 거위와 오리가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오리떼를 놀라게 해서 그 시끄러운 소리를 이용해 성을 함락시켰다는 못.

초목참 - 초목을 밴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초목조차 부끄러워할 만한 수치

         “반란을 평정하고 나라의 부끄러움을 �었다”

자자�다 - 이지역에서 자자�다는 잠시멈추다 로 표현


                         자려가는 까마귀 몇이나 지났는가

                      앞길이 어두우니 저녁눈이 잠시 멈춘다

                     아압지를 누가쳐서 부끄러움을 �어던고


 

 

  

 

겨울낚시를 줄기는 시이다.


“단애취벽(丹崖翠壁)이 화병(畵屛) 갇티 둘럿는듸”

   붉고 푸른 절벽이 병풍같이 둘렸는데


“배셰여라 배셰여라”

   배 세워라


“거구셰린(巨口細鱗)을 낟그나 몬 낟그나”

   큰고기를  낚으나 못 낚으나.


“고주사립(孤舟蓑笠)에 흥(興)계워 안잣노라”

   외로운배에  삿갓쓰고 흥에 겨워 앉아있노라


며칠을  벼루다 제바탕에 나갓는 것 같다.


단애취벽(丹崖翠壁) - 붉은 낭떠러지와 푸른절벽

화병(畵屛) - 그림병풍

거구셰린(巨口細鱗) - 큰입 작은비늘 즉 큰고기

고주사립(孤舟蓑笠) - 외오운배 도롱이와 삿갓


절경의 절벽이 병풍같이 둘러 있는데.

배 세워라.

큰고기를 낚으나 못 낚으나

작은배 삿갓쓰고 흥에겨워 앉아 있노라.


낚시꾼들의 기대를 잘 표현하고 있다.

낚시는 소문을 따라서 출조를 한다 그때의 기대는 나가면 무조건 소문대로 큰 고기를 낚아올 것 같은 기대이지만 낚시는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어서 기대를 져버린는 경향이 많다.

고산도 소문만 듣고 동사3에서 기대했던 제바탕에 온듯한데 낚시가 별로이다 그래서 낚시를 하는 것 만 으로 흥을 즐기자는 것 같다.



 고산의 “한”을 노래한시.


 “�가의 외로운 솔 혼자 어이 ��한고”

   물가에 외오운솔 혼자어이 씩씩한고


“배매여라 배매여라”

   배매어라


“머흔 구룸 한(恨)티 마라 셰샹(世上)을 가리온다”

   먹구름 한치마라 세상을 가리운다


“파랑셩(波浪聲)을 염(厭)티 마라 딘훤(?暄)을 막는또다”

   파도소리 염려마라 세속 시끄러움 막는도다.

파랑셩(波浪聲)- 파도소리

딘훤(塵暄) - 속세의 시끄러움


물가에 외로운솔 혼자어이 씩씩한고.

먹구름 한치 마라 세상을 가리운다.

파도소리 염려치 마라 속세의 시끄러움 막는 도다.


머흔 구름, 파랑성 은 세속과 단절된 매개체로서의 표현이다.

고산은 본인을 물가의 외로움솔로 표현하고 홀로 씩씩하다고 위로하며 먹구름은 세상을 가리고 파도소리는 속세의 시끄러움을 막아주니 먹구름 파도소리 또한 원망하고 한치 말아라.

 라는 표현은 모든 사물과 이루어지고 있는 조정의 사건들에 긍정적 사고로 일관하고 있다.



 챵쥬오도(滄州吾道) - “창주가 나의 도”라는 말로 두보의 시에 “나의 道 창주에 붙이네”라는 구절을 인용한 신선이 사는곳 또는 강호란뜻.


칠리(七里) 여흘 양피(羊皮) 옷 - 嚴子陵의 고사. 엄자능은 부춘산 속 칠리탄 에서 양피옷을 입고 낚시질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다함.


삼쳔뉵백(三千六白) 낙시질- 강태공의 고사

강태공은 10년동안 위수에서 낚시를 하면서 섬길만한 사람을 기다리다 주 나라 문왕을 만남


손 고븐 - 손 시린. 손이추운. 사투리


신선이 사는곳을 예부터 일럿더라

칠리탄 엄자능은 그 어떠 하련고 .

10년 낚시질에 손시러울때 언제던고


고산은 자기가 은거하고 있는 보길도 를 창주오도(滄州吾道)에비유하고 본인을 엄자능(嚴子陵)에 비유하며 강태공을 그린다.


겨울 낚시를 가지 못하였던 날이면 자기의 처신을 생각하고 조정을 그리워하였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저물어 간다는 표현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이와 져므러간다 연식(宴息)이 맏당토다”

   아 날이 저무는데 쉬어갈곳이 마당치 않구나


“배븟텨라 배븟텨라”

   배 붙여라


“가는 눈 쁘린 길 블근 곳 흣터딘 듸 흥치며 거러가셔”

  가는눈 뿌려진길 붉은꽃 흐터진데 흥청거리며 걸어가서


“셜월(雪月)이 셔봉(西峰)의 넘도록 숑창(松窓)을 비겨 잇쟈”

   눈오는달 서쪽봉에 넘어가도록 송창을 비겨있자

날이 저물어 간데 쉴곳이 마당치 않구나

가는눈 뿌린길 붉은꽃 흐터진데 흥얼거리며 걸어가서

겨울달 서봉에 넘도록 송창을 비겨있자.


고산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저물어간다로 하였으며 쉴곳은 마음의 평온함 또는 나라의 안정을 의미하며 가는눈과 붉은꽃은 효종의 정사을 표하고 본인이 흥겨웁게 지나가야하는데 아직 겨울달이 서쪽 봉오리를 넘을 때 까지는 창을 비겨 서있자.


아직도 정사의 연민과 임금의 부름을 기다리는 반면 서인들의 행포에 망설이는 “恨”을 담고 있다


 어부사시사

나는 전문해설가가 아니다.

이시는 완도가 배경이고  “낚시”라는데 흥미를 갖고 숙독 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

춘,하,추,동을 읽어가면서 흥분되어간다.

400 년전 시대상과 이지방의 생활상 토속방언 그리고 낚시꾼들의 정서와 감정표현은  낚시를 즐기는 한사람으로서 찬탄 할 수밖에 없었다.

낚시를 가기위해 새벽잠 설치고 “낚싯대로 세립문 더듬거리며 출조” 하는 표현 어찌 지금우리와 그리도 똑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대도시에서 섬지방에 출조를 할때에는 이틀밤을 지세운다.

하루는 출조 계획에 들떠 밤을 설치고 다음날은 아침 물때 보기위하여 밤세워 차로 내려오는데 서울에서 완도라면 밤차 6-7시간 세벽 2시 까지는 도착해야 준비하고 3-4시에 배를 타고 낚시장소에 도착하면 5시-6시 이런 고생에도 낚시는 불확실 하여 무수 하는 날이 많지만 출조 계획이 세워지면 2-3일은 밤잠 설치는 것이 낚시꾼들이다.

고산은 “낚시 광” 이였던 가보다.

은거 생활에서의 興을  낚시에서 찾았으며 만족할만한 興 의 세월을 부용동에서 만들어 가고 있다.

시의 전체적 이미지는 춘사에서 두 번의 흥으로 자연을 찬탄하고 모든 시적표현을 흥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산선생님의 은거생활은 “낚시로 인한 흥의 세월 이였다” 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어부사시사는 완도를 배경으로한 유일한 옛한글 시이다.

시의 배경이 이지역이여서 나는 이 배경에 익숙해져있고 특히 완도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으로 어부사시사를 숙독하면서 여러 문헌을 검토해본결과 토속 지방의 방언과 지역의 생활상에서 해설에 약간의 차이가 있고 감동에 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나름데로 우리가 현지에서 격고 있는 체험에서 얻은 것을 첨언하여 풀어보았다.


[출처] 어부사시사|작성자 샛님

출처 : 세실리아의 첫사랑
글쓴이 : 이일래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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