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베티 데이비스 아이스>란 노래가 한창 뜰 무렵,
노래를 불렀던 킴 칸스는 한 할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내용인즉슨 "당신 노래 덕분에
그 동안 나를 무시해왔던 손녀딸이
이제 할머니를 알아보고 존경하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것.
이 할머니가 바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대를 풍미한
팜므 파탈의 원조,전설적인 눈의 베티 데이비스(1908-1989)였다
일곱 살 때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뉴욕으로 온
이 눈이 큰 소녀는 어릴 때부터
연기 수업을 받으며 꿈을 키우다가
1929년 처음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게 되었고
이 연극에서의 연기를 눈여겨본 유니버설영화사에 의해
영화 <나쁜 자매들>의 험프리 보가트 상대역으로 발탁된다
데뷔 시절에는 그저 그런 영화로 소진하던 그는
30년대 중반에서 40년대 중반을 가로질러
워너브러더스에서 주옥같은 명작들을 남기며
할리우드 성격파 배역을 독식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승승장구는 전설적인 오스카상 수상 경력이 말해주는데,
1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무려 10번이나 여우주연상에 지명되었다.
1935년 <청춘의 항의>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
1938년 <흑란(黑蘭)의 여인>으로 여우주연상 트로피에
입맞춤하게 된다.
여우조연상과 주연상의 수상은
베티 데이비스가 처음이었다. 칸느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브의 모든 것>의 마고 역은
그의 분신과도 같은 역할이었는지 이 영화를
기점으로 그의 전성기도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1962년에 조앤 크로포드와
연기 대결을 펼쳤던
베이비 제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와
1987년의 나일 살인사건정도.
1977년 여성으로서 최초로 아메리카 필름
인스티튜트 상(평생공로상)을 수상한 그녀는
"나는 악녀 연기를 숭배한다. 모든 여자들에게는
악녀 기질이 숨어 있다. 이건 남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라며 공주나 섹스 심벌에 머무르지 않았던 당대의
개성파 연배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