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집 / 기 형 도
▒ 해설 / 정끝별 시인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나'는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棺)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 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
▒ Perhaps Love (아마도 사랑은) - 플라시도 도밍고 & 존 덴버 -
폭풍으로부터의 은신처이죠 사랑은 당신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존재해요 당신을 따뜻하게 지켜주는 곳이죠 그리고 어려운 시기에 당신이 가장 외로울 때 사랑에 대한 추억은 당신을 안식처로 안내할 거예요 Perhaps love is like a window 아마도 사랑은 창문과 같아요 아마도 열려 있는 문이죠 사랑은 당신을 더 가깝게 다가가도록 해요 당신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죠 그리고 당신이 길을 잃어도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다고 해도 사랑에 대한 추억은 당신을 도와 줄 거예요 Oh, love to some is like a cloud 오, 어떤 이에겐 사랑은 구름과 같아요 어떤 이에겐 강철과 같이 강해요 어떤 이에겐 살아가는 방법이예요 어떤 이에겐 느끼는 방법이예요 또한 어떤 이는 놓아 주는 것이라고 어떤 이는 사랑은 모든 것이라고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죠 Perhaps love is like the ocean 아마도 사랑은 투쟁과 고통이 가득차 있는 대양과 같아요 밖은 비록 추워도 뜨거운 불과 같아요 비가 내릴 때 천둥과 같아요 만일 사랑이 영원하고 나의 꿈이 실현된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추억은 당신에 관한 것일 거예요 And some say love is holding on 그리고 어떤 이는 말하지요 사랑은 견디어 나가는 것이라고 또한 어떤 이는 놓아 주는 것이라고 어떤 이는 사랑은 모든 것이라고 어떤 이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죠 Perhaps love is like the ocean 아마도 사랑은 투쟁과 고통이 가득차 있는 대양과 같아요 밖은 비록 추워도 뜨거운 불과 같아요 비가 내릴 때 천둥과 같아요 만일 사랑이 영원하고 나의 꿈이 실현된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추억은 당신에 관한 것일 거예요
2012/12/26 - 휘뚜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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