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드리는 기도 - 이해인 수녀님
주님, 지금껏 살아오면서
당신께는 무엇이든지
그저 달라고만 요구가 많았습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즉흥적으로 해놓고는
스스로 부담스러워한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아니 계시다고 외면해버리기엔
너무도 가까운 곳에서 저를 부르시는 주님
아직도 기도를 모르는 채 기도하고있는 저를
내치지 않고 기다려주시는 주님
이제 많은 말은 접어두고
오직 당신의 이름만을 끊임없이 부르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래의 후렴처럼
언제라도 쉽게 기억되는 당신의 그 이름이
저에겐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기도의 말이 되게 하십시오
바쁜 일손을 멈추고
잠시 하늘의 빛을 끌어내려 감사하고 싶을 때
일상의 밭에 묻혀있는 기쁨의 보석들을 캐어내며
당신을 찬미하고 싶을 때
새로운 노래를 부르듯이 당신을 부르렵니다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고싶거나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싹틀 때
여럿이 모여 남을 험담하는 자리에서
선뜻 화제를 돌릴 용기가 부족할 때
나직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깨끗이 하렵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주님
누구도 대신 울어줄 수 없는 슬픔과
혼자서만 감당해야할 몫의 아픔들을
원망보다는 유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더 깊이 고독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당신이 계시기에
고독 또한 저를 키우는 산이 됩니다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날에도
끝없이 불러야할 당신의 그 이름을 부르며
깊디 깊은 마음의 샘에서
줄기차게 길어올리는 신뢰와 사랑이
당신께 드리는 제 기도의 시작이요 완성이오니
주님, 이렇게 다시 드리는 저를
다시 받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