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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시

* 가을에-정한모- *

by "조우" 2012. 6. 5.

* 가을에-정한모- *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낸 전설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영원히 아름다운 진리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한 추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의 기억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 <여백을 위한 서정>(1959) -

 


  
  이 작품은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생명의 소중함,
 인간적인 순수함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이분 구조로 되어 있다.
 선과 악의 대결, 평화와 폭력의 대결 구도가 그것이다.
 즉 현실은 폭력이 난무하고 거대한 횡포 속에서 
 작은 평화는 무참히 깨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런 현실은 순진성을 앗아 가고 
 아름다운 꿈을 짓밟는다.
 천진한 미소의 세계로 불의의 세계를
 물리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서 화자는 안타까워한다.
 달에 계수나무가 박혀있다고 믿는 어린 날의 
 이 천진하고 아름다운 꿈도 현실은 단호히 거부한다.
 오로지 공포와 불의가 난무하는 이 세계에서 화자는 고통받으며,
 그러한 세계가 물러가기를 소망한다. 
 이 소망은 행동적이지 않다.
 역사 의식에 투철한 현실 개혁적 의지가 표출되는 것도 아니다.
 이 폭력의 세계를 타파하는 것은 오로지 순수 인간성의 
 구현뿐이라는 것이 화자의 믿음이다.
 따라서 이 시는 휴머니즘 정신을 토대로
 순수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한다.
 그러므로 자기 고백적 어조에 실려 소망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