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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시

* 가을의 기도 / 김현승 *

by "조우" 2012. 6. 5.


                   가을의 기도 / 김현승  

 

 


    * 가을의 기도- 김현승 -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초>(1957)-



가을날의 쓸쓸함과 경건한 삶을 추구하는 정신세계를 연결시킨 작품이다. 기독교적 정신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시인의 삶과 창작을 생각해 볼 때, 종교적 영적 충실함을 갈망하는 시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자신을 철저하게 고독한 존재(까마귀)로 만들어 달라는 자아의 갈망 속에는 엄숙하고 경건한 태도로 인생을 영위하려는 비장함이 담겨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