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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학,시

떠 먹여주는 말 / 박경분

by "조우" 2013. 11. 18.

 



    十二寸月顯其尾...십이촌월현기미 열두 마디 달 그 꼬리를 보이네 紅褪黃落今秋微...홍퇴황락금추미 빨간 단풍은 바래고 노란 건 떨어지고 올가을도 희미해지고 春夏秋冬六十七...춘하추동육십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예순일곱 번 씩 一葉二葉寥消美...일엽이엽요소미 한 잎,두 잎 쓸쓸히 사라져가는 아름다움들 *** 떠 먹여주는 말 / 박경분*** 아파트 노인정에 경로잔치가 열렸다 101동 할머니 103동 할아버지 잔칫상을 앞에 놓고 서로 눈치 보며 먹고 싶은 갈비찜보다 후줄근한 가지나물로 연신 젓가락이 오간다 -그저 나물만 드시지 말고 갈비 한 대 뜯어 봐요 -엊그제 아들이 갈비 사다 줘 먹은 게 아직 소화가 안 돼서…… 할머니나 많이 드시구랴 입만 떼면 갈비뼈 사이에서 나오는 말 -내 아들이 말여 강남에서 병원하고 있어야, 그거 아남? 굽은 등 우드득 펴며 뼈만 남은 어깨를 으쓱이는 할아버지 갈비 접시로 자꾸 눈이 간다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아들의 그림자처럼 갈비찜은 점점 눈에서 멀어지고 삐걱거리는 갈빗살을 움켜쥐고 돌아가는 할아버지 그 뒷모습을 따라가던 할머니 까만 비닐봉지를 건네며 -아들 자랑일랑 그만하고 이거 저녁 밥상에 올려놓고 그 허기진 갈빗살이나 채우슈 쭈글쭈글한 봉지 속 서로 떠멱여 주는 말 한마디 이빨 없는 입속이 환하다 <시와 시 지, 신인 등단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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