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마음/김광련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 詩도 먹고 싶다
구수한 잡곡밥에
꿈틀거리는 詩語로
한 양푼이 비벼
배 두들겨가며
먹어봤으면 좋겠다
싱싱한 詩語들이
행과 행 사이를 넘나들며
진액을 쏟아낸다면
폭 삭은 詩語들이
연과 연 사이를 오르내리며
찐쌀처럼 여운이 남는다면
배탈이 나도 좋으리
설익은 밥처럼
설익은 詩들이
혀끝에 매달려 오돌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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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식당/김광련
밀양 24번 국도변 뚱식당 있다
좋은 이름 두고 하필 뚱일까
식당 주인이 뚱뚱해서?
성격이 약삭빠르지 못해서?
한때 떵떵거리며 살았다는데
대궐 같은 집 남의 손에 넘어가고
남은 것이라고는
노모에 병든 남편, 여린 자식
장롱 밑 먼지만큼 빚더미만 수북하단다
이미자 "여자의 일생"을 즐겨 부르는 그녀
내가 죄라면 새끼 먹여 살린다고
죽도록 일 한 죄밖에 없는데
집 말아먹은 년이라 온갖 소리 다 듣는다
집 말아먹은 남편 누가 욕할까
이리 막고 저리 막고 신물이 난다
꽃 같은 내 청춘 어디 가고
주름진 마디마디 한숨만 나온다
식당 하면서 억척같이 밭농사 짓는 그녀
뚝배기보다 장맛이라
두툼한 손으로 주물럭주물럭
찌그러진 양은냄비 속 시락국
그녀 일생처럼 걸쭉하다
단물 다 빠진 그녀의 삶
시락국 속에서 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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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국장/김광련
드실 때마다 사레가 들리시는 어머니, 콩대 부여잡고 시집살이할 때
콩밥은 싫고 구수한 본편이 최고라 하더니. 애야, 먹다 남은 인절미
없냐? 이 떡 저 떡 맛있다 해도 콩가루 묻은 쫀듯한 인절미가 최고야!
생전 시할머니 사레 기침하실 때, 비린내 싫을 정도로 안치던 검정콩
약이라며 많이 안치라고 하신다. 안방 문 열자 청국장 냄새 피어나고
이불자락 뒤엉켜 삐걱거리고 지독한 가난 새끼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고 뼛골이 내려앉도록 일만 하셨다. 그 덕에 새끼 배 굶지 않았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해 휘어진 아버님 척추, 반듯하게 펴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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