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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傘(김광련)/김광련시

[스크랩] 울산문학 49(2009 가을호)

by "조우" 2013. 7. 23.

사춘기/김광련

 

식욕이 왕성한 열세 살 막둥이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총각김치 내주니 배추김치 달란다
일주일에 한 번 머리 감던 녀석
아침마다 샤워하고 옷을 바꿔 입는다
배춧속 여린 잎사귀 닮은 소녀가
알타리 무같은 마음을 흔들었나보다
깻잎, 호박, 고추를 밀어 낸 텃밭에
달빛 머금은 배추가 술렁거릴 때
무청은 덩달아 올라오고

무 밑동이 워낭처럼 울어댈 때

배추 고갱이 속 노랗게 익어간다
어느새 그 녀석,
배추김치가 더 좋다며
텃밭을 향해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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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

 

 

장대비 맞으며 집을 나선다
문수산 주차장에 당도하자
턱 숨이 막힌다
겨우내 눈 구경 한번 하기 어려운 곳
이월에 폭설이라니!
뫼 너머 문수사 수정궁궐이다

카메라 챙겨 들고 산을 올랐다
기도를 법당에서만 하랴 
휘어질 듯 휘어질 듯 내려앉는 눈
견딜 수 없는 무게만 털어내라고
감당치 못할 기쁨만 덜어내라고 
한나절 천상의 시간을 보내고
지상으로 내려와
무심히 돌아본 순간
수정궁궐 오간 데 없다
서둘러 겨울이 문지방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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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김광련

긴긴밤 그녀의 머릿속은 전쟁이었다. 단단히 발톱을 세운 서릿발이 벼 이삭을 단숨에 삼

키고 철수네 소 움막을 덮쳤다. 과수원 김씨 봉고차를 뒤집더니 기어이 온 동네를 휘졌고

난 새벽에서야 하품만 남기고 사라졌다. 고요하던 가을밤은 한순간 아수라장이 되었다.

새벽부터 동네사람들은 개골창이 된 골목에서 불면이 뱉어 놓은 가재도구와 눈알의 흔적

을 지우느라 법석댔다. 하늘이 말간 얼굴로 배시시 웃었다. 언제 그랬냐며, 시치미를 뚝,

뗀다. 예전의 너처럼, 지금도 구름 뒤에 태양이 있다. 바람을 앞 세워 건드려 본 뒤였다.

 

출처 : 무지개 뜨는 언덕
글쓴이 : 여산김광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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