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희라 시인/이희라·수필

[스크랩] 십년감수 /이희라

by "조우" 2014. 1. 11.

 

 

 

 

 

 

 

※ 이민일기 내용들 중에서 발췌해서 수필 형식으로 쓴 글입니다.

지난 주 이곳 교민 신문에 이 글을 올릴 때만해도  

어머니께서 공책에다 페이지를 적고 성경 필사를 하고 계셨는데..... 

 

 

            십년감수

 

                                            /이희라 

 

 

 한 남자가 무지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다. 지난 여름 쌍무지개가 나타나서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무지개 사진이 필요해서 찾아보니 무지개보다 한쪽에 함께 찍힌 남편의 뒷모습이 더 눈에 띈다. 우리 부부는 엊그제 남편이 삼십 년 이상 피워온 담배를 끊은 지 일 년 되는 날이라고 자축했었다.

 

 일 년 전 남편은 위가 심하게 아프다며 8년 만에 홈닥터를 찾아갔다. 초음파 검사와 위내시경을 찍었고 그 결과를 알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남편은 그동안의 일들을 감추고 있었고 내시경 검사 결과에 따른 상담이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도 의사를 만나기 전날에서야 나에게 알렸다. 그 긴장, 불안감이란…….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남편의 얼굴색도 말이 아니었다. 다음날, 다행히 헬리코박터 때문이라며 이주일치 약을 타가지고 온 남편은 하루 종일 혼잣말로 십년감수. 십년감수를 되풀이 했다. 그동안 마음 고생하면서 남편은 담배를 끊었던 것이다.

 

 수명이 십 년이나 단축될 만큼 어려운 고비를 겪는다는 뜻의 십년감수[十年減壽]. 우리는 크고 작게 십년감수를 겪으면서 살고 있다. 가장의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는 것은, 특히 이민 생활에서는 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이번 일로 십년감수하면서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일생 최대의 위기를 맞으셨던 친정어머니를 일곱 살 어린 날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날 갑자기 우리 집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었다. 어머니가 막내를 임신해서 만삭이셨고 칠남매 중 맏이인 큰오빠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서른여덟의 젊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것이다.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가셨었다고 했다. 그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면 우리는 중학교도 못 다녔을 거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으면서도 정작 어머니께서 힘들게 헤쳐 나오신 역경의 시간은 생각을 못했었다. 장마철에 무섭게 불어 넘치는 하천의 흙탕물을 헤치고 우리들을 업고 건너서 학교를 보내시던 씩씩한 어머니였기에 어머니는 무엇이든지 힘들지 않게 다 해내시는 분인 줄만 알았다

 

 일곱 명의 어린 자식들과 누워 있는 남편을 챙기시느라 막내를 출산하고도 몸을 채 추스르지 못하셨을 어머니는 염소, 돼지, 토끼, 닭들을 집에 들여놓으셨다. 꽃밭이던 마당은 채소밭이 되었고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릴까봐 매일같이 염소젖을 부지런히 짜내셨다. 동네 공터에는 주인의 허락을 받고 고추, 깨, 콩.. 등 밭농사도 지으셨던 서른여덟의 젊은 어머니. 그 당시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고도 또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어머니께서 겪으셨을 그때의 어려움을 헤아려 보다니…….

 

 시일이 걸렸지만 천만다행으로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서 복직하셨다. 정년퇴임하실 때까지 서너 번 또다시 쓰러지셔서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셨으니 그때마다 어머니는 얼마나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셨을까. 그 시절 아버지의 적은 공무원 월급은 외상값을 비롯해서 그날로 다 나가 버렸다. 그래도 어머니는 씩씩하셨고 우리들도 크게 불안해하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칠남매의 맏이이셔서 막내 고모와 삼촌들까지 교육시키고 결혼 시키셨는데 어머니의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지금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는 칠남매 모두에게 성경 필사본을 주시겠다고 다섯 번째를 완성해가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두 번을 쓰셨으니 칠남매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위암 수술과 대장암 수술을 두 번 하시고 젊은 사람도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오래 해온 어머니. 지난 칠월에 항암치료를 포함해서 모든 치료를 중단해야할 정도로 위중하신데도 이십 일에 대학공책 한 권 분량을 쓰시는데 어머니 스스로도 놀랍다고 하신다. 일 년 전 뇌졸중으로 중환자실에서 열흘 만에 깨어나셨을 때도 제일 먼저 펜을 달래서 글씨 연습부터 하셨다고 했다. 어느 한 자식에게 성경 필사본이 돌아가지 않을까봐 어머니는 또 한 번 크게 십년감수하셨을 것이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재미난 일이 별로 없다. 한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가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곳도 내 나라 한국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여기저기서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경기를 일 년으로 잡았다가 앞으로 일 년은 더 힘들 거라고도 한다. 이렇게 세상이 살기 어려워졌지만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더 겸손해지고 이웃을 염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면 큰 욕심일까? 거친 풍랑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그 바람이 있어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언젠가 그 시간들이 지난 후에 훌륭한 선장이 되어 있음을 알고 기뻐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모진 풍파를 이겨내신 옛 어른들의 지혜와 힘을 우리들이 분명히 물려받았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방금 전에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지금 뭐하고 계셔요?"

"공책 사오라고 해서 페이지에 번호 쓰고 있다"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