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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라 시인/이희라·수필

[스크랩] 인생의 선물 /이희라

by "조우" 2014. 1. 11.

 

 

인생의 선물

 

 

                                                                                              /이희라

 

 

세상은 온통 '나'를 찾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까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고 있다. 나이 듦은

성숙함과 지혜를 얻는 축복이라 여기려 해도 쉽지가 않다. 지금부터라도 나이 듦에 대한 시선을 조금씩

바꿔가고 싶다.

 

얼마 전 나를 포함한 오십이 된 여자 셋이 칠순이 넘으신 어른들을 모시고 식사를 했는데 그 분들이

우리에게 꽃다운 젊은 사람들이니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그 말에 꽃다운 젊은 사람이 된 게 신이 나서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탕수육과 갈비구이를 씩씩하게 먹었다.

 

이렇게 같은 나이에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고3은 의젓해 보이는데 대학 신입생

들은 얼마나 귀엽고 풋풋한가. 70대인 시어머니가 80대의 할머니 앞에서는 꽃다워 보이고 노인회에

처음 가입했다는 어느 아주머니가 노인회에서는 본인이 귀염둥이라고 해서 웃었던 일도 생각 난다.

여섯 살 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동생들 앞에서 '네가 한두 살 먹은 애기야?'라는 어머니의 꾸지람에

나이 먹은 것이 서러웠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살아오면서 나이에 대한 생각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따라다닌 것 같다.

 

젊어 보인다고 하면 괜스레 흐뭇해지고 나이 듦에 대해서는 자주 의기소침해진다. 40대는 30대에게 30대는

20대에게 '참 좋은 나이'라고 '내가 5년만 젊었어도…….'라고 하면서 마치 무슨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순전히 나이 때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왜 이리도 흔들리는가.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 걸까.

 

예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게 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시간은 몸과 마음에 그 흐름의 흔적을

새기고 어김없이 나를 여기까지 실어 왔다. 이제 내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살아온 시간보다 많지 않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떠했던가? 기억 속에서 살아온 날들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같이 늙어가는 남편이 눈에 들어온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우리

부부도 결혼 25주년을 맞이했다. 이곳 어느 분의 50주년 금혼식 파티에서 뵈었던 아름답던 노부부의

모습을 떠올리며 앞으로 금혼식을 향해 우리가 또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해 봤다.

 

인생을 축구 경기에 비유한 어느 글이 떠오른다. 25세까지는 연습기간, 50세까지는 전반전,

75세까지는 후반전, 100세까지는 연장전이니. 후반전이나 연장전에서 터지는 결승골을 기대하라고.

 

100세가 넘은 일본의 할머니 시인이 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가 70만부 넘게 팔리면서 일본인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고령사회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나 말이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하지만 시를 짓기 시작하고/ 많은 사람

들의 격려를 받아/ 지금은/ 우는 소리는 하지 않아// 98세라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꿔/ 구름도

타고 싶은 걸'

 

블로그에 이에 관한 기사를 올렸더니 어느 할머니가 ' 제 가슴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세요? 할머니

시인님의 소식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연세에도 혼자 사실 수가 있고. 시를 지으실 수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실 수가 있다니~~놀라워요.'라는 댓글을 달아주셨다. 소녀처럼 감동하는 그분

의 댓글이 또 나를 설레게 한다.

 

곱게 늙어가는 이를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인다. 거기에다 꿈을 가진 이는 더 아름답다. 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꿈은 인간의 생각을 평범한 것들 위로 끌어올려

주는 날개이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인생은 자신의 몫, 내가 사는 보람은 무엇인가를 조용히 검토해 봐야겠다. 남편이 사는

보람이요, 아이들이 사는 보람이요, 일하는 것이 사는 보람이라고 한다면, 그것들을 잃었을 때 동시에 나는

사는 보람을 모두 잃게 된다. 분명히 잃지 않게 되는 보람도 있으리라.

 

표지판만 보는 게 아니라 좌우도 살피고 밤하늘의 빛나는 별도 여유롭게 바라보는 인생이고 싶다. 멀리 떠나

보낸 꿈들을 다시 불러 모아야겠다. 인생에는 유턴이 없으니 남아 있는 길이라도 넓고 풍성하게 채워 가야

하지 않겠는가?

 

양희은 씨의 '인생의 선물'이라는 노래를 요즘 자주 듣고 있다.

그녀가 직접 썼다는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

 

‘ 만약에 누군가가 /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 안개빛 같은 젊음이라면 /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내 인생의 꽃이 다 피고 / 또 지고 난 그 후에야/ 비로소 내 마음에 / 꽃 하나 들어와 피어 있었네./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아주 예쁜 꽃 하나가 들어와 피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내게 주어지는

모든 시간은 인생이 주는 고마운 선물일 거라는 생각과 함께…….

 

 

 

 

스와니강/포스터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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