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깁다 / 이희라
남편의 방한복을 손질한다.
지퍼를 올리려니 꼼짝 않는다
그가 걸어온 길이
지진으로 찢어진 도로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봉합되지 않는다
녹슬어 이가 빠진 지퍼
혹한의 거리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의 어금니가 뽑히는 것도
참아낸 것일까
일거리를 파헤치던 소맷귀는
낡아 헤어져 탄력을 잃고
말없이 삼키고 만 사연들이
실밥마저 닳아 터진 자리에서
살며시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본다
싸늘한 동전 한 잎
한 푼이라도 아껴 쓰려던 그가
자린고비로 살아온 삶의 비늘이다
작은 일에 투정하며 쐐기를 박았던 말들
터진 옷깃을 깁다 말고
가벼워진 방한복을 와락 안아본다.
'* 이희라 시인 > 이희라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시] 하이힐의 고백 / 이희라 (0) | 2014.01.11 |
---|---|
[스크랩] [시] 잘 익은 시 / 이희라 (0) | 2014.01.11 |
[스크랩] [시] 북어 / 이희라 (0) | 2014.01.11 |
[스크랩] [시] 팽이, 사색에 젖다 / 이 희라 (0) | 2014.01.11 |
[스크랩] [시] 노란 깃발 / 이희라 (0) | 2014.01.11 |